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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루
김지은 | 승인 2019.07.30 16:35

최재선 : 시인 · 수필가 겸
한일장신대 교양학과 교수

 

먼지바람 일던 땅에 비가 두루 내린다.
숲은 초록을 한 겹 덧입어 색을 갱신하고 시무룩했던 풀잎 표정에 생기가 두루 돈다.
비가 이렇게 오려고 아버지 허리뼈가 그렇게 두루 놀라고, 어머니 무릎뼈에 틈틈이 두루 바람이 들락거렸다 보다.
박 씨 어르신이 삼례 모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허리에 있는 통증이 달아났다고 아버지께서 여러 번 말씀하셨다.
고향을 떠나오신 지 10년째, 이곳에서 아버지 유일한 말벗인 박 씨 어르신까지 모시고 삼례에 있는 병원에 들렀다.  
“와! 저 집 깨 참 잘 됐다. 깨 덕 좀 보겠다.”, “저 집 고추는 곧 따겠네. 고추농사를 어떻게 저리 잘 지었을까.”, “비 그치고 나면 고추에 농약 해야 쓰겠네.” 세 분 은 주로 차창 밖으로 보이는 농작물에 두루 관심을 보이셨다. 텃밭 한쪽에 식구들 먹을 상추나 좀 심고 밭농사 그만 하시라며 핏대까지 자주 세웠지만, 만날 허사로 끝났다. 사람 사는 집에 딸린 땅을 놀리면 땅을 죽이고, 다른 사람 눈에 보기 흉하다는 이유로. 의사 선생님이 어머니께 두루 물었다.
“어르신은 허리와 무릎이 언제부터 아팠어요?” ㅅ자로 꺾인 허리를 의사 선생님 앞에서 최대로 펴고 어머니께서 또박또박 말씀하셨다. “60대부터 아팠어요. 그런데 그때 한참 아이들 가르치고 농사짓느라, 내 몸 돌볼 새가 없었어요. 병원에 갔더니 수술하지 않으면 걷지 못한다고 합디다.” 병원 모시고 갈 때마다 어머니는 이 문장을 의사 선생님 앞에서 꼬박꼬박 꺼내신다.
울컥 눈물이 두루 쏟아지는 걸 애써 참았다.
“어르신! 그때 그 시절에는 허리나 무릎이 아프면 무조건 수술해야 한다고 그랬어요. 그런데 지금은 수술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에요. 오히려 수술하면 나이 들어 더 힘들어질 수 있어요.”
가물었던 어머니 표정이 두루 축축해지며 맑게 해갈되었다.
나는 빌린 지 오래된 빚 이자쯤 갚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잠시 마음이 두루 평온했다.
세 분 진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도 비가 멎지 않고 두루 내렸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학교로 내달렸다.
학교 식당 협동조합 교수 이사 모임이 있어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자신에게 금전적으로 한 푼 이득이 되지 않는 일을 통 크게 시작한 모 교수님 열정과 헌신의 화덕에 한 개비 마른 장작이 되고 싶었다. 아니 이보다 더 간절했던 게 있다.
우리 학교 식당이 밥만 먹는 곳이 아니라,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말씬거리게 자리하였다.
그저 한 끼 때우는 식으로 먹는 밥이 아니라, 집에서 먹는 집밥 냄새와 분위기가 두루 나는 밥. 밥때가 되면 함께 밥 먹는 사람들이 두루 정겨워지는 밥.
우리 학교 구성원이 이런 밥을 먹을 수 있게 협동조합을 만든다고 할 때,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끼어들었다.
이곳저곳에서 우려하는 말을 많이 들었다.
사업이나 장사에 문외한인 사람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식당을 운영한다고 하니, 염려가 이만저만 아닐 게 뻔하다.
아무것 하나 없이 오로지 우리 구성원이 밥다운 밥을 먹자는 
생각 하나만 하고 시작했다.
나는 회의 때나 한 번씩 참석하지만, 일선에서 일을 하고 계시는 몇몇 교수님은 여름방학을 두루 이 일에 쏟고 계신다.
곁에서 보고 있으면 힘이 되어주지 못해 두루 미안할 뿐이다.
밥 이전에 쌀이었다.
쌀 이전에 벼였다.
벼는 저 홀로 생존하려고 결코 힘쓰지 않는다.
서로에게 곁이 되고 이웃이 되어 결속된 힘으로 두루 살아간다.
그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분명히 두루 동고동락한다.
저 혼자 살려고 발버둥 치면 모진 비바람 앞에서 그만 쓰러지고 말 것이다.
벼는 단순히 나락이 아니라, 넘어지지 않는 불멸의 힘이다. 그 힘으로 협동하고 그 힘 조합하여 두루 함께 사는 끈끈한 관계이다.
점심을 먹고 연구실에 앉아 창밖 풍경을 눈으로 끌어들였다. 지난 학기 강의한  ‘마음을 다스리는 글쓰기’를 토대로 논문을 썼다.
「자기 표현적 글쓰기가 대학생의 자아존중감과 심리적 안녕감에 미치는 영향」이란 글이다.
그리고 네 번째 수필집 『흔들림에 기대어』교정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고 마지막 교정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 3월에『첫눈의 끝말』이란 시집을 출간하고 곧바로 수필집을 출간했으니, 나름대로 두루 잘 산 것 같다.
쉼 없이 걸어왔던 길을 두루 뒤돌아본다.
바람이 등을 떠밀며 웅크리고 있던 삶의 고요를 으깬 날 있었다.
땅 멀미를 하여 어찔어찔하게 구토에 시달린 때가 무진장 있었다.
시 쓸 소재를 찾아 나서면 그리움이 행장을 차리고 따라나서 느릿느릿 걸어야 했다.
숨쉬기조차 힘든 날 해녀처럼 자맥질하면서 처절하게 숨 고르기를 한 세월도 있었다.
명료한 사실은 이 모든 게 두루 내 시가 되었다.
길을 걷다 몇 번쯤은 두루 뒤돌아봐야 한다.
발자국은 새지 않고 잘 따라오는지, 멀쩡하다고 믿는 구석 속에 솎아낼 것은 없는지. 애지중지 품고 있던 것 가운데 잡동사니 같은 것 없는지, 애틋하게 이름 부르며 함께 가자고 부르는 사람 없는지. 길을 걷다 몇 번쯤은 두루 뒤돌아봐야 한다.
비의 노래가 저음으로 바뀌며 고덕산 허리를 새가 두루 휘젓고 다닌다.
이 땅의 모든 생명이여! 부디 두루 평강하길...

 

김지은  hojenen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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