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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통문화전당 동아시아 종이문화특별전무형문화재 색지장 '김혜미자 특별전' 진행
김지은 | 승인 2023.09.18 15:01

천년을 이어온 전통한지가 색지장 김혜미자 선생의 손길을 닿아 한지의 고운 빛깔을 뽐낼 전망이다.
한국전통문화전당(원장 김도영)은 ‘동아시아 종이문화특별전’의 일환으로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60호 색지장 김혜미자 선생의 특별전을 15일부터 내달 10일까지 전당 2층 전시실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이번 전시는 색지장 김혜미자 선생이 그간 인생을 살아오며 자식처럼 다듬고 매만져온 작품 90여 점을 공개하는 자리다.
김 선생은 전시를 통해 한지공예의 가치와 문화재로서, 공예가로서의 열정을 선보인다는 방침이다.
지난 40여년 한지공예가의 길을 걸으며 전주를 넘어 전국에 한지공예의 뿌리를 내리기 위해 후학들을 양성해온 김혜미자 선생은 한지공예가로서 ‘색지장’이라는 새로운 분야에서 무형문화재로 인정받은 최초의 인물이다.
김혜미자 선생은 “한지공예 작업은 내가 살아있는 한 할 수 있는, 해야 할 가장 큰 기쁨이자 의무라고 생각한다”며 “그 길을 걸으며 고단하기도 했지만 즐거웠고, 외로웠지만 보람 있었다. 한지공예는 내게 선물이었 다. 아직도 부족함이 있지만 남은 여생 한지공예를 전수하고 그 가치를 가르치는 일에 힘쓰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와 관련 김도영 한국전통문화전당 원장은 “명실공히 한지공예의 대가이신 김혜미자 선생님의 특별전을 개최하게 돼 영광이다”며 “한지공예가 대중에 널리 알려지고 전통공예로 인정받는 데 큰 힘이 되어주신 선생님의 작품을 통해 한지의 예술 영역을 더욱 확장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특별전 오픈식은 15일 오후 4시 한국전통문화전당 2층 전시실에서 진행된다. <색지장 김혜미자 선생 : 010-2006-3207>

<붙임> 한지공예

한지공예품은 조선후기 한지가 민간인들에게 보급이 늘어남에 따라 다양하게 만들어졌다.
그러나 다른 공예품들과 달리 내구성이나 내수성이 약한 소재의 특수성으로 인하여 칠을 하거나 개인이 소중히 보관해 오던 것들을 제외하곤 많이 소멸되었다고 보아진다. 한지공예품에 관한 문헌 기록이나 조선 후기 이전의 유물이 적어 이에 대한 명확한 근거 자료나 발생년도를 가늠하기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다. 다만 고구려 약수리 무덤, 덕흥리 무덤 등의 벽화에서 등롱(燈籠/대나무나 쇠 따위로 살을 만들어 겉에 종이나 헝겊을 씌우고 그 안에 등잔을 넣어 사용하는 등)이나 탈 등이 그려진 것을 보자면 아마도 삼국시대부터 종이로 된 기물을 만들어 사용 하였을 거라 짐작 할 수 있다.
. 18세기에는(1770년대 초) 경성(서울)의 광동 목기전에서는 문목장과 지장장을 만들어서 팔았다는 기록도 찾아 볼 수 있다. (곽대응 통영 소공방의 특징 중)
경국대전 권6 공전의 경공장 외공장편에 보면 지장(지장 종이를 만드는 장공인) 화장(화장 종이꽃 만드는 장인) 우산장(우산장 종이우산 만드는 장인) 배첩장(배첩장 표구하는 장공인) 등 다양한 종이를 가지고 공예품을 만드는 장인들을 두고 한지공예품의 수요를 충족하게 하였다고 본다.
현재까지 전해 내려오는 한지공예 유물을 보자면 일부는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단순하고 투박한 공예품 외에도 색실첩이나 색실함 등 복잡하고 섬세하게 만들어 진 작품을 보자면 필시 양반가에서 사용하였을 듯 하고  전문장인의 솜씨가 느껴지는 공예품들은 외공장의 장인에 의하여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세종의 문화정책으로 많은 서적이 간행되었고 학문에 더욱 충실한 시대를 맞으면서 한지의 수요는 점점 더 증가하게 되었다.   이러한 한지의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파지 또는 폐 서적의 증가로 이어지고 이로 인하여 궁중이나 양반가에서나 볼 수 있던 한지공예품이 민간에서도 손쉽게 만들어 쓰였다. 파지나 폐 서적을 재활용하여 만든 기물들은 민간에서 널리 쓰이기도 하였다.
종이를 잘라 엮어서 만드는 지승공예나 폐지를 물에 불려 풀과 섞어 만든 함지박이나 지독 등은 현재에도 간간히 모습을 보이는 바 조선후기에는 본격적으로 한지공예가 성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 당시 혼수용품으로 지장이나 지농을 선호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그 당시의 구전가요인 흥부가의 박타령에 나오는 선망하는 가구 품목 가운데 지농이 들어있음으로 알 수 있다.
3합이나 5합으로 이루어진 지장상자나 팔각 또는 육각으로 이루어진 반짇고리는 규방여인들의 소품상자로 애용되었다.
따라서 한지공예는 일반인들의 단순한 생활 소품부터 상류층의 화려한 장식용품까지 다양하게 사용되었다고 보인다.
이는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고 제작방법도 어렵지 않아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고 미적으로나 실용성도 뛰어났다고 볼 수 있다.
한지는 그 재료, 가공법, 용도에 따라 그 종류가 달라진다.
한지는 질기고 부드러워 공예품을 만드는데도 최상의 재료였으며 보온성과 흡습성이 높아 민가에서는 옷을 만들어 입기도 하였다.
한지공예는 조선후기에 이르러 더욱 성행하였다.
러시아 공사 베베르가 러시아 표토르박물관에 기증한 지장함은 명성황후가 하사 한 물품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자태는 화려하다.
이로 인하여 한지공예품이 궁에서도 귀빈들의 선물이나 하사품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김지은  hoje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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